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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미국 뉴저지다.
한국인 배우자, 며느리, 사위를 찾는 교포들이 많아서
이곳에 머무는 내내 면담이 계속 이어졌다.
면담 여부의 기준은 어느 정도 결혼 가능성이 있느냐이다.
만나도 안될 것을 알면서 헛된 기대를 하게 하는 건
본인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이다. 한 여성이 메일로 면담 신청을 해왔다.
1960년생, 우리 나이로 55세이다.
‘원 없이 사랑도 했습니다. 사랑에 관해서 후회는 없습니다. 한국 남자가 싫었고, 그래서 미국인과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이혼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다시 한국 남자가 만나고 싶더군요….’
55세면 나이 따지는 남자들이라면 “시든 할미꽃”이라고 할 나이다. 여성 자신도 폐경기 이후에는 이성을 만나고 싶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감을 갖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세월의 벽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사랑을 찾는 이 여성의 당당한 태도에 흥미가 생겼다.
뉴저지 리치필드에 있는 호텔의 로비 라운지. 한국에서 중위권 대학 졸업. 글로벌 회사에 근무. 이혼한 지 10여년, 미국에 온 지 20여년 되었고, 두 딸을 모두 로스쿨에 보냈다. 이 정도의 프로필만을 접한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입구 쪽을 보고 있는데, 내 시선을 사로잡는 한 여인의 등장. 늘씬하고 세련된 모습이 언뜻 40대 중반으로 보이기에 아닌 듯했는데, 나를 알아보고는 자리로 다가왔다.

“너무 젊어 보이셔서 다른 분인 줄 알았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사랑을 많이 해보셨다고 해서 무슨 말씀인가 했는데, 직접 뵈니까 매력적이셔서 인기가 많았을 것 같아요.”
“스물세 살 때 스위스계 글로벌 기업에 들어갔어요. 회사 특성상 중역분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는데, 프러포즈를 많이 받았어요. 연애도 많이 했고요.”
“한국 남자가 싫으셨다는데, 외국인들을 자주 보셔서 그런가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한국 결혼문화가 싫어서죠. 아픈 기억이 많네요.”


 

"한국 남자 싫어 미국인과 결혼하고 이혼해보니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그녀는 지나온 삶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미혼 때의 일이다. 병원에 갔는데, 진료를 한 의사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제를 시작했는데, 결혼 얘기가 오갈 무렵 열쇠 3개를 요구하더란다. 그럴 돈이 없다고 했더니 헤어지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고위 공직자와 젊은 시절에 사귄 적이 있는데, 서로 좋아하고, 그분 어머니도 좋은 분이셨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을 출세시켜줄 만한 능력 있는 여자를 며느리 삼았으면 좋겠다. 근데 넌 그런 능력이 없다.”
어렵게 키운 아들이 성공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고, 미련 없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한국이 싫어졌고, 그런 이유로 외국계 기업에 들어갔다. 그 회사의 CEO가 프러포즈했고, 당시에는 일이 좋아서 거절했는데, 그러면서 외국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고, 결국 미국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자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딸이 둘인데,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예요. 밤에 아이가 많이 우는데, 잠이 깬 그 사람이 내 배를 차더군요. 왜 애를 잘 안 돌봐서 잠을 깨게 만드느냐고요.”
“주위에 선생님 좋아하는 분 많았는데, 그분과 결혼하신 이유는요?”
“한국 남자들에게는 없는 패기가 있었다고 할까요? 그 사람 전 재산이 1500만원 있었는데, 그 중 1000만원을 나한테 프러포즈하는 데 쓰고 나머지 500만원을 갖고 결혼생활을 시작했어요.”
“그건 패기가 아니라 무모한 거죠. 현실감각이 없거나.”
“그러게요. 어렸던 거죠. ”
결국 성격차이로 남편과 이혼했다. 홀로 직장생활을 해서 두 딸을 키웠다고 한다. 이런 경우 대개는 자식들 크는 거 보면서 사는데, 그녀는 꾸준히 연애도 했고, 재혼 생각도 했다고 한다.
“대표님. 난 아직도 한창인데, 왜 만남이 잘 안 될까요?”
“흔히 55세면 여자로서의 삶은 끝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 선생님은 모르는 사람보다는 평소 알고 지내는 분과 자연스럽게 만나 가까워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 한국남자가 다시 좋아지셨어요?”
“살아보니 미국 남자는 너무 합리적이라고 할까요. 잔정이 없어요. 사랑한다는 말은 참 많이 해요. 그런데요. 아프다고 하면 미국 남자들은 병원 가서 치료하라. 이게 끝이에요. 한국 남자들은 어디 아프냐, 이마에 손도 얹어보고, 병원에 같이 가자, 그렇게 걱정을 해주잖아요.”
“그건 환상이에요. 같이 안 살아보셔서 모르시는구나. 그동안 한국 남자들은 안 만나보셨어요?”
“몇명 만나봤죠.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은 정력적이었어요. 결혼도 생각했는데, 가족문제가 걸려서 잘 안 풀렸어요. 또 한 사람은 성공한 기업가인데, 바람둥이여서 그만뒀고요. 언젠가 만난 사람은 딸 둘, 사위와 같이 사는데, 저랑 결혼해도 같이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게 한국의 문화라고 하면서요. 그게 이해가 안 돼서 헤어졌어요.”
“어떤 남성분이 좋으세요?”
“물론 성적으로 잘 맞아야 해요. 그리고 건강한 거.”

두 딸 모두 로스쿨에 다닌다고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10위권 안에 드는 학교는 학자금 대출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큰딸이 법대에 들어갈 때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전 남편에게 절반만 내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큰딸은 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렸고, 둘째 딸만 가끔 연락을 하는 정도라고 한다. 그녀도 전남편 소식은 알고 있지만, 연락은 안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경제력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 어느 정도 성공한 분, 세련되고 교양있는 여성의 외조가 필요한 분. 그런 분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게 남자들 로망인데, 선생님은 그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거든요. ”
내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직접 얘기하기는 뭐했는데, 내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주었다는 그런 신뢰의 표정이랄까.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대화에 집중했다. 그녀의 다이나믹한 인생에 대해 들으면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여성이 사랑을 포기하는 나이에 자신 있게 도전하는 여성. 끊임없이 사랑을 찾고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는 시드니 쉘던의 ‘게임의 여왕’의 주인공처럼 세월의 벽을 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멋진 여성이었다. 이제 내가 그녀에게 어울리는 멋진 남성을 찾아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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